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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타고니아 브랜드의 탄생

지구의 건강 상태는 그리 좋지 않습니다. 몇몇 선진국과 일부 사람들 사이에는 우리의 보금자리인 지구가 인간의 일 때문에 위험할 정도로 더워지고 있다는 인식이 커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관련 기사, 책, 영화, 과학자들의 경고가 넘쳐나고, 군까지도 지구 온난화가 인류의 안전을 위협하는 가장 큰 요인이라고 말하고 있는데도 정부, 기업, 그리고 당신과 나는 계속 망설이면서 이 문제를 역전시키기 위한 의미 있는 발걸음을 좀처럼 내딛지 않고 있습니다.  리스본에 살던 이본 쉬나드는 1946년 캘리포니아로 이주하게 됩니다. 프랑스계 캐나다인 가족의 집에 얹혀 살게 된 이본 시나드는 키도 작고 영어도 할 줄 모르는 학생이었습니다. 게다가 이본이라는 여자 같은 이름 때문에 학교에서는 친구들에게 끊임없이 놀림을 받아야 했습니다. 그는 자기 자신을 지키기 위해 기업가라면 누구나 했을 법한 선택을 내리게 됩니다. 바로 학교에서 도망치는 선택이었죠. 그렇게 고등학교 때까지도 학교에서 바나나로 불리던 이보는 한 클럽에 들어가게 됩니다. 이번처럼 학교에 적응하기 어려워하는 몇몇 아이들과 음악교사였던 로버트 클라임즈, 대학원생이었던 톰 케이드를 비롯해 몇몇 어른들이 함께 어울려 매를 훈련시키는 클럽이었죠. 클럽에는 마침 등반가인 돈 프렌티스가 있었습니다. 그는 이본에게 로프를 타고 절벽을 내려오는 레펠링을 가르쳐주게 됩니다. 이후 이보는 그것을 최고의 스포츠라 여기게 됐고, 끊임없는 연습 덕분에 발전과 혁신을 거듭할 수 있었습니다. 심지어 죽음의 문턱에 다다르면서도 레펠링에 빠져 있었죠. 그러던 어느 날 자신의 등반 장비를 직접 만들고 싶었던 이보는 중고 화덕과 모루, 집게와 해머 등을 사와서 대장간 일을 독학하기 시작했습니다. 평소 그가 높은 암벽을 공략할 때는 수백 개나 되는 피톤을 암벽에 박아넣어야 했습니다. 당시 사용하던 피터는 한 번 박아 넣으면 다시 뺄 수 없는 장비였습니다. 다시 사용하려고 뽑아내다 보면 그대로 부서지기 일쑤였죠. 게다가 당시에는 등반에 사용되는 모든 장비는 다음에 암벽을 오르는 사람을 위해 그 자리에 그대로 남겨두는 것이 관행이었습니다. 하지만 랄프 왈도 에머슨이나 헨리 데이비드 소로 같은 사상가들의 글을 읽으며 자란 이보는 산에 오르거나 자연을 찾아갈 때는 그곳에 갔던 흔적을 남기지 말라는 사상가들의 말을 마음속 깊이 새기고 있었습니다. 대장간 이를 독학한 이분은 결국 자신의 손으로 직접 만든 피톤을 사용해 등반에 도전했습니다. 기존의 피톤보다 더 단단했던 그의 피톤은 몇 번이고 다시 뽑아내서 다시 사용할 수 있었습니다. 이본은 이피톤을 자신과 자신의 친구들이 사용하기 위해 만들었지만 이 피톤이 점차 주변 사람들에게 소문이 나면서 많은 사람들이 이본에게 피톤 제작을 부탁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크롬, 몰리브덴 강철로 1시간 동안 만들 수 있는 피터는 2개에 불과했습니다. 한 번 쓰고 다시 사용할 수 없었던 유럽산 피톤은 20센트면 살 수 있었지만 이번에 피톤을 구매하기 위해서는 1달러 50센트나 되는 돈을 내야 했습니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이 이번에 피톤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점차 다양한 등반 장비를 만들어내던 이분은 겨울이면 내내 장비를 만들었고, 날이 따뜻해질 때면 대부분의 시간을 안벽에서 보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이분에게 갑자기 영장이 날아왔고 그는 원하지 않는 군 생활을 해야만 했습니다. 자신이 사랑하는 등반과 등반 장비 제작을 그만둬야 한다는 생각에 화가 난 그는 군 생활을 제대로 해낼 리 없었습니다. 잔머리를 굴리던 이보는 결국 1964년 기적적으로 명예제대를 하고 맙니다. 고향으로 돌아온 이분은 다시 등반 장비를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으로 제품 카달로그가 나왔고 첫 직원까지 고용하게 됩니다. 점점 손으로 만들어서는 수요를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제품이 많이 팔려나가자 기계를 사용해 등반 장비를 제작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본의 제품이 잘 팔릴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그가 제품을 만들 때 무엇보다 품질을 최우선으로 생각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적절하지 못한 제품은 사람을 죽음에 이르게 할 수 있는 만큼 제품의 품질을 항상 최우선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이번의 사업은 날로 번창했고, 더 큰 작업장을 마련하고 더 많은 직원을 뽑으며 쉬나디 이킨먼트라는 회사를 만들게 됩니다. 신화 이킨먼트는 등반을 위한 장비를 만드는 회사였습니다. 그 무렵 이본은 의류에도 관심을 가지게 됩니다. 1960년대 후반 영국에서 등반을 마친 그는 한 오래된 공장을 찾았습니다. 그곳은 즐기고 무거운 코듀로의 천을 만드는 기계들이 마지막으로 남아 있는 곳이었습니다. 청바지를 만들 때 사용하던 소재인 데님을 사용하기 전에는 이 코드로의 천을 활용해 작업복을 만드는 것이 일반적이었습니다. 이 소재는 옷이 닳거나 찢어지는 것을 막아줄 정도로 내구성이 좋은 소재였고, 이본은 이 코드로의 천을 보며 등산복을 만들 때 사용하기 좋은 원단이라는 아이디어를 떠올리게 됩니다. 그는 이 옷감을 주문해 엉덩이 부분이 이중으로 된 반바지와 무릎 아래까지 내려오는 반바지를 만들어 사람들에게 판매했습니다. 등반을 하는 사람들에게 인기가 많았던 이곳은 주문이 점점 늘어나고 은퇴해 있던 사람들이 공장에 나와서 일을 해야 할 정도로 주문이 많아지게 되었습니다. 점점 더 많아지는 주문에 점점 더 다양한 의류 제품을 만들던 그들에게는 의류 라인만의 이름이 필요했습니다. 입원과 직원들이 토론을 하던 중 파타고니아라는 이름이 처음 등장하게 됩니다. 파타고니아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파타고니아라는 특정한 장소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이상향을 떠올리게 하는 이름이었습니다. 결국 그들은 험준한 남부 안데스와 케이프온의 환경에 어울리는 의류를 만드는 것을 목표로 파타고니아라는 브랜드를 만들게 됩니다. 1973년 진짜 파타고니와의 강력한 연계를 위해 폭풍우가 몰아치는 하늘, 피츠로이산의 스카이라인을 기반으로 한 삐죽삐죽한 봉우리, 그리고 푸른 바다가 있는 파타고니아 로고를 만들게 됩니다. 이로써 우리가 현재 알고 있는 파타고니아라는 브랜드가 탄생하게 됩니다.

 

브랜드 특징, 복지

파타고니아 제품의 모든 디자인은 기능적 필요성에서 시작됩니다. 방한용 레이는 수분을 흡수하고 피부가 숨을 쉴 수 있게 만들며 빠르게 건조되도록 만듭니다. 등산 재킷은 방수 기능이 있고 팔 움직임이 편해야 하며 땀을 내보내는 통기성이 있게 만듭니다. 기능이 없는 디자인은 만들지 않겠다는 것이 파타고니아의 제품 디자인 철학이었습니다. 게다가 파타고니아 역시 품질을 최우선으로 생각했습니다. 제품의 내구성이 뛰어나도록 만드는 동시에 끊임없이 제품을 개선했습니다. 아무리 내구성이 좋은 옷이라도 언젠가는 수선할 시기가 찾아오기 마련이기에 파타고니아는 모든 제품을 수선할 수 있게 디자인하고 있었습니다. 또한 관리와 세탁이 쉽도록 빨래를 하고 건조기에 넣지 않아도 깔끔한 모습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제품을 만들고 있습니다. 사실 의류 사업이란 패션을 쫓는 사업이라고 해도 무방한 사업입니다. 패션은 유행에 따라 빠르게 변화하는 만큼 유행을 따라잡지 못하면 도태되는 것이 의류시장입니다. 하지만 파타고냐는 무엇보다 품질을 최우선으로 하기 때문에 유행을 따르거나 선도할 수는 없다고 이야기합니다. 파타고냐는 제품을 만들 때 이렇게 여러 가지 제품 디자인 철학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잘 생각해 보면 옷의 기본에 가장 충실한 제품을 만드는 것이 파타고니아의 목표가 아닐까 싶습니다. 파타고니아의 노동 문화는 치나드 이킨먼트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시드 이킨몬트는 이본 시나드 본인과 직원들, 그 친구들을 위해 최고의 등반 장비를 만들던 작은 회사였습니다.

그들은 제품을 사용하는 사람과 만드는 사람 사이에 구분을 두지 않았습니다. 고객의 관심사가 곧 직원들의 관심사였죠. 파타고니아 역시 가능한 많은 파타고니아 직원이 파타고니아의 진짜 고객이 되도록 하는 것이 첫 번째 고용 원칙이었습니다. 이보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제품에 대해 열정적인 관심이 없는 사람들을 직원으로 두면서 공정 업계 최고의 제품을 만들기를 원하는 기업은 상상할 수 없다. 파타고냐는 구인 공고를 내거나 채용 박람회에 참석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친구나 동료, 동업자들로 이루어진 비공식적 네트워크를 통해 직원을 채용하는 것에 집중했습니다. 그저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을 찾는 것이 아니라 일에 가장 잘 맞는 사람을 원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파타고냐는 사무실에 있는 것보다 베이스 캠프나 강가에 있을 때 더 편안함을 느끼는 사람들을 채용했습니다. 물론 회사가 성장하며 점차 전문적인 지식을 가진 사람들이 필요했고, 밖에서는 절대 잠을 자지 않는 사람들을 직원으로 뽑아야 하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그들 모두가 서핑을 하든, 등반을 하든, 정원, 각국이나 지역사회를 위한 활동이든 나름의 아웃도어 활동을 열정적으로 하고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파타고니아는 직원 복지 또한 신경을 많이 쓰고 있었습니다. 파타고니야는 균형 잡힌 삶을 사는 직원들을 가치 있게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의 근무 정책은 다른 사람들에게 안 좋은 영향을 주지 않는 한 언제나 유연한 근무를 보장하는 것이었습니다. 과거 대장간을 운영하던 시절부터 2m짜리 파도가 올 때면 언제든 작업장 문을 닫고 파도를 타러 나가는 것이 그들의 문화였죠. 이런 문화가 파도가 칠 때는 서핑을 이라는 이름의 근무시간 자유 선택 정책으로 자리 잡았다고 합니다. 책의 제목이기도 하죠. 직원들은 이 제도 덕분에 언제든 좋은 파도를 타러 갈 수 있게 되었고, 오후에 마음껏 암벽을 타고 학업을 계속 이어나가고 일찍 집으로 돌아가 아이들을 맞이하는 식의 유연성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동시에 회사는 귀중한 직원들을 얻을 수 있었죠. 이런 특권들을 남용하는 직원은 파타고니아에서는 찾아보기 힘들다고 합니다. 게다가 1984년부터 사내 어린이집을 운영하면서 부모인 직원들이 방과 후에 아이들을 돌보는 일에 걱정을 하지 않도록 돕고 있다고 합니다. 회사는 부모가 모유 수유를 하거나 아이들과 점심을 함께 먹거나 언제든 센터에 방문해 아이들과 어울릴 것을 장려하고 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자연스럽지 않은 광경이죠. 이렇듯 파타고니아는 다양한 복지제도를 운영하고 있다고 합니다. 파타고냐는 상부의 지시만 따르는 일개미를 원하지 않았습니다. 좋지 않은 결정이라는 판단이 들면 어떤 결정에도 의문을 제기하는 직원을 원했습니다. 이본 쉬나드는 파타고니와 같은 복잡한 회사에는 단 한 사람이 문제에 대한 한 가지 해답을 가진 경우는 잘 없다고 이야기합니다. 직원들은 각자가 일부의 해답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파타고니아는 좋은 해답을 위해 좋은 소통에 큰 의미를 두고 있었습니다. 파타고냐의 사무실은 이런 발상을 현실에 반영하고 있습니다. 회사에는 어느 누구에게도 개인 사무실이 없다고 합니다. 직원 모두가 문이나 칸막이 없는 개방된 공간에서 일하고 있다고 합니다. 또한 카페테리아를 운영해 직원들에게는 몸에 좋은 유기농 식품을 제공하고 언제든 비공식적인 회의 장소로 활용할 수 있도록 활용하고 있다고 합니다. 인상 깊었던 점은 직원들의 해고를 제일 마지막 순위에 두고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우리는 종종 뉴스를 통해 구조조정 이야기를 듣곤 합니다. 구조조정 이야기에 빠지지 않는 것이 있다면 바로 직원을 해고하는 이야기죠. 하지만 파타고니아에게 해고란 정말 최후의 방법일 뿐이었습니다. 경영 부진을 겪게 될 경우 우선 고용을 동결하고 불필요한 출장을 줄이고 전체적인 지출을 줄이는 방법을 택하고 있었습니다. 그보다 더 심각한 위기가 찾아올 경우 고위직 관리자의 보너스를 없애고 공급을 줄이며, 그다음 근무 일수를 줄이고 급여를 줄이고 그 이후에서야 마지막 수단으로 직원을 해고하는 방법을 택하고 있었습니다. 직원을 이렇게나 생각해 주는 회사라면 하루 중 대부분의 시간을 기꺼이 회사에 투자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사실 파타고니아 하면 대부분의 소비자들이 떠올리는 이미지는 환경을 보호하는 데 앞장서는 회사라는 이미지입니다. 다른 기업들은 자신들의 제품을 사라고 열심히 홍보하는 것과 달리, 파타고니아는 자기네 제품을 사지 말라고 홍보할 정도니 우리가 파타고니아라는 회사를 환경과 연관짓는 것은 무리가 아닐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파타고냐는 환경 보호를 위해 어떤 노력들을 하고 있을까요? 기업이 스스로 하기 어려운 일 중 하나는 자신들이 만드는 제품이 환경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조사하고 환경에 악영향을 미치는 제품을 바꾸거나 더 이상 생산하지 않는 것이라고 합니다. 1991년 파타고니아는 자신들이 만드는 제품을 진단하는 환경 평가 프로그램을 시작했습니다. 자신들이 만드는 제품이 환경을 얼마나 오염시키는지 확인하기 위해 또 그런 제품을 개선하기 위해서였죠. 2005년부터는 재활용을 위해 고객들로부터 폴리에스테르 의류를 수거하기 시작했고, 2011년부터는 파타고니아가 만드는 모든 제품을 회수하기로 결정했습니다. 회수를 원하지 않는 고객을 위해 수리 센터를 만들고 고객들이 직접 수리할 수 있도록 수선 방법까지 고객들에게 제공하고 있었죠. 그래도 제품을 만드는 이상 환경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을 수는 없기에 환경 보호를 위해 매년 기부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회사의 세전 수익의 10%와 총 매출의 1% 중 더 큰 금액을 매년 환경보호를 위해 기부하고 있다고 합니다. 파타고냐는 환경보호를 위한 자신들의 노력에 다른 회사들도 동참할 수 있도록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노력이 지금의 파타고니아라는 존재를 만들었고, 우리가 파타고니아를 환경보호에 앞서는 회사라고 생각하게 된 계기가 아닐까 싶습니다. 지금까지 파타고니아라는 회사는 어떤 회사인지 알아보았습니다. 이 내용은 책 파타고니아 파도가 칠 때는 서핑을 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후기

책에 나오는 내용 중 일부를 요약해서 간단하게 소개해 드렸는데요. 책을 읽는 내내 파타고니아가 제품의 품질을 위해 또 환경을 위해 얼마나 노력하고 있는지 알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 책은 파타고니아의 창립자인 이본 쉬나드가 직접 쓴 책인데요. 직접 쓴 책인 만큼 파타고니아의 역사부터 철학까지 상세한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이 책을 통해 파타고니아라는 회사에 대해 더욱 깊게 알 수 있었고, 모든 기업들이 나아가야 할 방향, 그리고 소비자가 어떤 제품을 구매해야 하는지도 함께 고민해 볼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파타고냐라는 회사에 대해 더 자세히 알고 싶은 분, 좋은 철학을 가진 회사를 운영하고 싶은 분, 현명한 소비자가 되기를 원하는 분이 꼭 한번 읽어보셨으면 하는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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